한약처방론에 대한 견해
필자의 의술의 논리를 쉽게 이해하려면 필자의 공부의 시발점이 어디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필자의 의술의 시발점도 《동의보감》이었다. 그런데 동의보감을 보다 보니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처방전을 외우는 공부보다는 그 약을 먹으면 왜 나을까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어디를 보아도 아픈 증세와 처방전만 나와 있지 그 약을 먹으면 왜 질병이 치료되는가 하는 ‘이치’를 설명해 놓지는 않았다. 그것은 시중에 나와 있는 다른 한의학 책을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즉 어디가 어떻게 아프면 무슨 약 몇 그램 하는 식이지, 그 약이 우리 인체에 들어가면 무슨 작용을 하여 질병이 치료된다는 논리적 이치에 관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동의보감》의 가장 큰 약점이고 한의학이 빨리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였다. 한약의 이치를 풀기 위해서는 우리 인체에 질병이 왜 생기는지, 치료는 어떠한 이치로 되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 우선일 것 같아 책을 찾아보았지만, 내가 원하는 책은 어디에도 없었고 오히려 우리가 늘 하는 말이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이야 모든 해법은 우리 주변에 다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처음 이 방면의 공부를 할 때만 해도 눈 뜬 장님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흔히 듣는 말 중에 “만병은 피가 못 도는 데서 시작된다.”거나 “인간은 소우주다.”라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이러한 말들이 그냥 하는 말이거니 여겼는데, 지금에 와서는 아주 정확한 표현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당시 나는 이러한 말 속에 모든 해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인간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운영이 될까? 등을 화두로 삼고 삼년을 명상한 뒤 그 답을 알게 되었다. 삼라만상, 온 우주 만물의 생명의 이치는 같다는 것, 누구나 한 번쯤은 들은 이야기인데 이것을 실감하는 데는 안타깝게도 삼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곤충, 동물, 우리가 사는 사회 등 이 모든 것들이 생성되어 자라고 죽는 이치가 같다는 것은 가끔 들은 이야기인데, 이 속에 모든 해답이 있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진리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고, 너무나 당연하니 오히려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많다. 상식이란 단어가 나왔으니 상식적인 말을 해보자. 《동의보감》이나 《본초강목》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처방전들이 별 효능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과연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효능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같은 증세를 치료하는데 왜 처방전이 책마다 다르냐는 것이다. 약초의 종류가 많은 것도 원인이 되겠지만, 간단히 말해 그 주요 원인은 치료와 약성의 이치와 논리는 빠뜨리고 각자 임상 실험을 통해 효과를 본 것으로 처방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논리적으로 역 추적해보면 어떤 약을 쓰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해답은 저절로 얻어진다. 설명을 다 하자면 길어지니 간추려 설명해 보겠다. 같은 증세의 처방전은 책마다 모두 달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존재한다. 즉 약초의 이름은 달라도 그 맛을 보면 맛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약초의 이름이 달라도 맛이 같다면 약의 효능도 같다는 것을 알려 준다. 질병이 생기게 된 원인과 생명의 이치, 약성의 효능을 계산하면 아주 간단한 처방의 이치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산수의 구구법만큼이나 간단하고 분명하다. 즉 약초의 종류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맛으로 구분하면 몇 가지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각 맛마다의 효능을 이해하면 약초의 이름을 몰라도 간단히 처방을 할 수 있게 된다. 차이가 있다면, 맛의 강약은 약성의 강약, 여기에다 한 약초가 몇 가지의 맛을 내든 맛의 강약에 따라 양을 정한다면, 어떠한 약재도 혀끝에 닿는 순간 그 효능을 알 수 있으며 어떤 증세에 응용을 할 수 있는지도 바로 알게 된다. 그래서 기존의 처방전과 나의 처방의 논리는 다를 수밖에 없다. 나의 기준으로 기존에 많이 사용하는 약재의 약성을 보면 약 80% 정도가 어혈을 녹이는 것이다. 내가 앞에서 모든 병은 어혈 때문에 생긴다고 한 말과 우리가 흔히 말 하는 만병의 원인이 피가 못 도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나의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앞서 설명한 논리에 의해 내가 알아낸 맛에 따른 약성을 분류 하면 다음과 같다. 누구나 이 이치만 이해하면 간단한 처방을 할 수 있고 다양한 응용이 가능할 것이다.
- 쓴맛(음) : 어혈이나 지방질, 단백질 등을 분해하는 기능
- 단맛(양) :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
- 매운맛(양) : 체온을 상승시키게 하여 활력을 주는 기능
- 아린 맛(음) : 마취의 기능과 통증을 감소시키는 기능
- 비린 맛(중성) : 해독기능, 이뇨기능(신장 기능 저하 요산 해독기능)
- 신맛, 떫은맛(음) : 해독기능, 어혈분해 기능
- 짠맛(음) : 해열작용과 침입한 미생물을 무기력하게 하는 기능
천궁, 작약 등과 같이 강한 향을 지닌 식물은 흥분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피로회복에 도움을 준다. 한약의 약성 가운데 중요한 하나가 침입 균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백혈구가 침입 균을 쉽게 물리치게 하는 기능으로, 이 기능의 약성은 ‘염성’이다. 염성의 기능은 죽염편에 설명하였으니 생략하고 여기에서는 약초를 설명하고 있으니 약초에 있는 것을 말하면, 그 대표적인 식물이 포공령 즉 민들레다. 흙 속에도 다량의 염성이 있는데 이 염성을 제일 강하게 흡수하는 식물이 민들레다. 맛을 보아 짠맛이 나는 것은 다 염성이 강한 식물로 보면 되는데, 이들의 기질은 음에 속해서 양이 승할 때 이것을 써주면 중화가 된다. 이 것이 곧 해열의 원리이다. 약초의 종류가 아무리 많아도 위에 나열한 몇 가지를 벗어나지 못하며 다만 이들이 복합적으로 섞여서 여러 가지 맛을 내고 있을 뿐이다. 각 맛의 강약으로 약초의 양을 정하고, 여기에 약초의 새순을 잘라서 나오는 진액의 상태를 살펴서 적용하면 처방에 좀 더 도움이 된다. 진액의 상태에 따른 약의 기능은 다음과 같다.
- 쌀뜨물처럼 나오는 식물 : 뼈와 간, 췌장의 조직세포 형성에 도움을 준다.
- 무색의 끈적한 어묵처럼 나오는 식물 : 백혈구의 식량이 되고 골수를 형성하며 지방을 분해한다.
- 물처럼 묽게 나오고 짠맛과 비린맛을 지닌 식물 : 요산의 해독에 아주 탁월한 기능이 있다.
아주 탁월한 기능이 있다. 이와 같이 약재를 분류하다 보면 약재가 아닌 식물은 없다. 다만 맛의 강도에 따라 양을 적게 혹은 많게 조정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편, 약재가 우리 몸속에 들어와서 인체의 기능을 변화시키는 것은 다음 몇 가지로 함축되어진다.
-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시키는 기능
- 어혈을 분해하는 기능
- 침입 균이 힘을 못 쓰게 하는 기능
- 통증을 완화시키는 기능
- 신장 기능 저하 요산을 해독하는 기능
- 간 기능 저하 독성분 해독기능
모든 약초의 기능을 이 다섯 가지로 구분하고 그 양을 조절하는데 가능하다면 같은 기능을 하는 약초라도 여러 가지를 조금씩 혼용해 쓰는 것이 이독제독(以毒除毒)의 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 약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나는 일반적으로 쉰 종류의 약제를 구해 놓고 처방할 때는 보통 서른 가지 정도를 혼용하는데, 처방 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어혈을 녹이는 기능의 강약이며, 이것의 양을 각 개인의 체력에 맞게 얼마나 정확히 넣었느냐가 바로 처방의 핵심이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그에 따른 증상이 수없이 많아 이것을 모두 설명하기엔 양이 너무 많아 여기에 소개하지 못한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경험부족으로 인해 어혈이 분해되는 성분의 약재를 많이 넣었다고 할지라도 사혈요법을 동시에 응용하면 별 무리 없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약성이 어혈을 분해하는 데 있었다면 그것이 빨리 분해가 되었을 경우 조금 더 사혈을 해주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혈이 녹은 양에 따라 사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어혈을 급격히 녹여 놓으면 신장 기능에 무리가 와서 어혈이 녹아 생혈과 섞이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기존의 피가 혼탁해져서 이뇨작용에 장애를 주게 된다. 따라서 신장의 이뇨 능력에 맞추어 어혈을 녹이는 강도를 조절하는 것이 처방의 비법이라고 하겠다. 쉽게 말해 신장의 이뇨작용으로 배출할 수 있는 만큼만 어혈을 녹여 놓는 것이 매우 중요한 대목이라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강조한 것은 처방의 원리로, 이 원리대로 처방한다면, 처방전은 아주 단순해지며 식물의 약성을 이해하는 이치자체가 곧 처방전이 될 수 있다. 나는 모든 일,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논리적 이치를 중요시한다. 나는 질병을 해결할 수 있는 이치를 ‘원의 이치’라 이름 지었는데, 이는 시작도 끝도 없는 이치로서 앞으로 돌려도 뒤로 돌려도 논리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자연의 이치이다. 내가 앞에 설명한 약초의 약성 논리와 질병이 오는 이치, 그리고 그것이 복원되는 이치는 같은 것이어서 하나의 원이 끝없이 돌 듯 같은 이치로 연결되어 맞아 떨어진다. 현대 서양의술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원인을 찾아 근본적으로 치료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부분적으로 잘라서 생각하고 치료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요즈음 행하고 있는 한방 치료 역시 이러한 면은 동일하다고 생각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의사가 질병을 설명하면서 “그 병은 습에서 온 것이다. 열이 몰려서 그렇다.” 혹은 태양, 태음, 소양, 소음 등의 체질을 들먹이며, 그러니 당신은 이러저러한 처방을 해야 한다, 혹은 음식으로는 무엇 무엇이 당신에게 맞다라고 하는 말을 우리는 종종 듣게 된다. 이 말들은 겉으로 보기에 아주 적절하게 들린다. 하지만 조금만 주위를 기울여보면 그들이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을 말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원의 이치로 연결하면 그 이해가 쉬워진다. 상식적 논리로 보건대 원인이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다. 만약 습에서 온 병이라 주장을 하려면 마땅히 왜 습한 체질이 되었는지를 밝혀야 한다. 다시 말하면 습한 체질, 그것 자체에서 질환이 온 것이니 습한 체질의 원인과 결과인 병증 그리고 치료 방법과 효과가 논리적으로 연결이 되어야만이 올바른 이론, 올바른 치료법이라는 것이다. 약초마다 그 원리를 다 따로 설명하는 것은 끝도 없으며 무의미하다. 맛은 누구나 구분이 가능하다. 그러한 맛으로 약초의 기능을 간단히 분류해 놓았으니 누구라도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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