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을 보는 나의 시각
우리나라의 한의학은《동의보감》이나 《본초강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 두 책이 한의학의 전부라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할 정도라서, 산 속에 있는 내가 그것을 평가한다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고, 인술을 베푸신 분께 누가 될까 더욱 망설여진다. 하지만 존경하는 마음과 의술의 논리를 평함은 다른 것이라 생각하고 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옛날에도 그랬거니와 현재에도《동의보감》이나《본초강목》은 한의학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나에게 허준 선생님을 평해보라면, 동의보감을 집필하시고 오늘날 한의학의 기초를 마련하시고 인술을 베푼 분으로 나 자신도 대단히 존경한다. 하지만《동의보감》이라는 책을 평해보라면 생각이 다르다. 참고적 가치는 있어도《동의보감》을 보고 지금도 그대로 처방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에디슨이 전기를 처음 발견하고, 그것이 전자제품의 시조가 되었지만 그때의 기술이 지금도 최고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다. 다만, 우리보다 앞서 전기를 발견했다는 사실만으로 존경하면 된다.《동의보감》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고 보는데,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동의보감》이 집필된 것은 약 350년 전인데,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자. 먼저 체질을 생각해보면, 그 당시 중금속이란 단어가 있었을까? 요즈음은 먹는 물, 음식, 공기 등 모든 것이 독극물과 중금속에 오염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 당시는 채식을 위주로 했고 요즈음은 육식을 비롯한 고단백 식품을 많이 섭취한다. 이것만 놓고 보아도 그때와 지금 사람의 체질이 다르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또 처방전을 한번 보자. 그 당시는 모든 약재를 우리 산에서 채취한 자연산으로 약의 양을 정했지, 지금처럼 재배한 것도 비싸다 하여 수입산으로 양을 정하지는 않았다. 수입산과 국산은 성분이 결코 같을 수가 없다. 이렇듯 사람은 체질이 바뀌었으며, 약재는 성분의 함량이 다른데 어떻게 지금도《동의보감》의 처방을 그대로 쓸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동의보감》에는 더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바로 약성의 이치에 대한 종합적이고도 명확한 해석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즉 허리가 아프면 무슨 약 몇 그램 하는 식이지 그 약이 우리 몸속에 들어가면 어떠한 반응을 일으켜 질병이 치료가 된다는 이치가 빠져 있다. 침술 역시 마찬가지다. 어디 아프면 어디 어디에 침을 놓으면 낫는다는 식이지 침이 들어가면 우리 몸이 어떠한 반응을 일으켜 질병이 치료된다는 그 이치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 그나마 조금 이러한 이치에 대해 설명한 것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 많다. 논리와 이치, 상식은 의술을 모르는 사람도 들으면 쉽게 이해가 되어야 한다. '이치’라는 것은 보편 타당한 것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다. 자연은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거대한 하나의 무질서적 질서 속에서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규칙적으로 돌고 있고, 이 도는 이치는 모두가 같다. 다만 원으로 표현하면 큰 원이냐 작은 원이냐 하는 차이 밖에는 없다. 인간도 자연의 한 일원이기에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자연의 섭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언제고 변하지 않고 누구나 그렇다고 인정할 수 있는 이치와 논리, 즉 상식과 다름이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기적 혹은 우연이란 것도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모르니 기적이니 우연이니 하는 것이지, 이루어지는 과정을 알고 나면 그것은 상식일 뿐 기적이나 우연이란 없는 것이다. 신비의 명약이니 신비의 처방이니 하는 말은 이러한 이치 자체를 모르기에 나온 말이다. 《동의보감》과《본초강목》은 그 약을 복용하면 몸속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 질병이 치료가 되는지에 관한 이치적, 논리적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니, 아무리 많은 사람이 배워도 결국은 그 책의 내용 처방전을 얼마나 외웠느냐 하는 차이이지 자신의 의술로 승화시켜 새로운 의술이 탄생하기엔 구조적 약점이 있다는 이야기다. 한번 생각해보자. 진리와 이치가 없는 책을 놓고 아무리 많은 사람이 배워도 결국은 모든 사람의 생각이 비슷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동의보감》을 보고 의술을 공부했다면 기존의 한의사와 생각이 다를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배운 과정이 다르기에 생각이 다른 것이다. 여기에서 기존의《동의보감》의 의술만 최고라고 고집하고, 다른 의술은 입증이 안 되었다는 논리를 가지고 법의 힘으로 막는다면 영원히 새로운 의술은 탄생하기 어렵다. 내가《동의보감》의술의 처방전을 전적으로 나쁘다고 비방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의술에 대한 공부의 시작은《동의보감》이었다. 내가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은 이《동의보감》이 참고적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우리가 의술을 빨리 터득하고 발전시키려면 여러 항목을 분석하여 수치적으로 입증해 나가는 접근보다는 이치와 논리, 상식이 통하고, 그 방법을 통해 치료를 해서 질병이 나은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보니, 분석적 방법을 통해 수치로 입증된 것만을 인정하려는 고정 관념이 있는데, 이 부분도 조금만 깊게 생각하면 너무 고집부릴 일은 못 된 다. 현대의학이 밝혀 놓은 것은 자연의 섭리로 보았을 때 아주 미약한 것이다. 10분의 1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나머지 전체를 평가하려는 생각도 사실상 이치에 안 맞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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